Understanding requires effortful engagement
이해는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본 내용은 앤디 미투삭의 노트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어떤 아이디어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반드시 그 아이디어와 적극적으로 씨름해야 한다.
단순히 글을 읽거나, 강의를 듣거나, 대화 속에서 개념을 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아이디어는 어떤 경우에 적용되고, 어떤 경우에 적용되지 않을까? 이 아이디어가 가져올 결과는 무엇일까? 이 아이디어가 전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누구의 관점을 반영한 것일까? 이 아이디어가 반박하는 것은 무엇인가?” 와 같은 질문들이다.
스티븐 코슬린(Stephen Kosslyn)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첫 번째 원칙은 “철저히 생각하라”이다. 핵심은 간단하다. 어떤 것을 철저하게 생각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일수록, 더 잘 기억하게 된다.
인지 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의 관점에서 볼 때,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용들을 스스로 추론(infer) 하기 위해서이며,
둘째, 새롭게 관찰한 내용을 이미 알고 있던 지식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다. (참조: 킨치(Kintsch)의 『이해력(Comprehension)』).
이 아이디어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며,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식의 전통적 교육(transmissionism)이 효과적이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쇼펜하우어(Schopenhauer)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글을 읽을 때,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서 생각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의 사고 과정을 반복할 뿐이다. … 읽으면 읽을수록, 읽은 것의 흔적은 점점 더 옅어진다. 우리의 마음은 수없이 덧칠된 석판과 같아서 성찰할 틈이 없다. 성찰을 통해서만 읽은 내용을 흡수할 수 있다. 만약 읽은 후에 다시 곱씹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간다면, 읽은 내용은 결코 뿌리내리지 못하고 대부분 사라질 뿐이다. 정신적인 음식도 육체적인 음식과 마찬가지다. 사람이 먹은 음식 중 극히 일부만 흡수되고, 나머지는 증발하고 호흡과 함께 날아가 버리는 것과 같다.
그랜트 샌더슨(Grant Sanderson, 2019-11-28) 역시 이렇게 표현했다.
그 아이디어와 눈을 마주쳐야만 한다.